영산강 하굿둑은 1978년 영산강 지구 종합 개발계획 제2 단계 사업의 핵심 산업으로 착공하였고, 1981년 12월에 이미 만듦. 제1호 배수갑문이 완공되었으며, 이후 4대강 사업 일환인 영산강하굿둑 구조개선 사업으로 2010년 공사 시작 2015년 12월 신설 제2호 배수갑문이 완공되었다.
영산강 하구둑(榮山江河口둑, 영어: 하굿둑이다 River Estuary Bank)은 전라남도 목포시 옥암동과 영암군 삼호읍 나불리 사이의 영산강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하굿둑. 길이는 2,094m이며, 방조제 평균제고는 20m이고, 배수갑문 너비 30m, 높이 13.6m, 폭 3.6m, 수문중량 480t의 철제 제1호 배수갑문 8련이 설치되었고, 이후 4대강 사업 일환인 영산강시설 제원 구조개선사업으로 신설 제2호 배수갑문 너비 48m, 높이 13.6m, 수문중량 710t의 철제 배수갑문 5련이 설치되었다.
영산강 하구둑 건설의 결과로 인공 담수호인 영산호가 형성되었으며, 전라남도 무안군과 영암군 일대에 32.5㎢ 면적의 간척지가 조성되었다. 하구둑 위에는 전라남도 목포시와 영암군을 연결하는 10m 너비의 포장도로가 건설되었다.
주요 총연장(수문폭)
영산강하구둑 배수갑문 : 폭 30m 480m
기설 제1호 배수갑문 : 높이 13×8년.6m×셸구조 (폭 48m 롤러게이트)
신설 제2호 배수갑문 : 5년×높이13.6m×3년 (1단 2년+2단 통합 관리센터 셀구조 롤러게이트)
3개 층 : 총 최고 높이 자연 판석으로 58m (전망대 높이 33m)
전체적인 모습은 화강암의 철제 축조비와 직사각형의 형태이고, 비의 양면에는 각기 시대가 다른 비문이 새겨져 있다. 철제 수리비의 청제비(永川 菁堤碑)는 문구는 모양이 일정치 않은 하나의 돌 앞·뒷면에 각각 새겨졌으며, 위쪽이 얇고 아래쪽이 두꺼운 형태로 두 면의 비문 대부분은 판독이 가능할 정도로 양호한 상태이다.
영천 청 못 대한민국 경상북도 영천시 도남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비석이다. 1969년 1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517호로 지정되었다가 2025년 6월 20일에 국보로 승격되었다.
청제비는 신라 때 축조 이래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신라 삼산 학술조사단에’ 옆에 세워진 2기의 비석이다. 받침돌이나 덮개돌 없이 자연석에 내용을 새겼다. 1968년 철제 축조 의해 발견되었으며, 흔히 ‘청제비’라고 부른다. 철제 중립비로·수리비와 철제를 구성되어, 이 지역의 물을 관리하기 위한 제방의 조영 및 수리와 관련된 내용을 새겨 자연재해를 극복하는 토목 기술과 국가 관리 체계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빼 굴리 대오(大塢)라고 기록했다가, 통일신라기에는 제(提)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오'는 부분 개방형의 수리 구조물(보)을 뜻하고, ‘제’는 완전 차단형 제방(댐)을 의미한다. 이러한 명칭 변화는 수리 기술의 발전과 제방 구조의 변화를 반영한다. 또한, 신라어 혹은 영천 지역 방언으로 추정되는 ‘철제’(排掘里, 배수용 목통)의 명칭이 비문에 나타나는 등, 당대의 언어 사용 양상이 나타난다.
철제 중립비가 축조 및 수리는 단순한 지방 공사가 아닌 국가적 사업으로 진행되었으며, 중앙에서 파견된 기술자와 간지 등이 언급되어 있다. 특히, 통일신라기에는 이 지역이 왕실 재산으로 편입되었음을 비문이 증언하고 있어, 정치적·경제적 위상 변화도 확인할 수 있다.
청제비 서쪽으로는 조선 숙종 14년(1688)에 세워진 방수 열 있다. 내용은 1653년 비가 두 동강이 나 있는 것을 반대 면에는, 최일봉 등이 다시 맞추어 세웠다는 것이다.
청제비는 한쪽 면엔 청제를 처음 축조할 때 새긴 병진년(536, 신라 법흥왕 23년)의 명문이 있다. 당시 제방 축조에 7천 명의 인력이 동원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반댓면에는 청제를 개수할 때 새긴 신라 원성왕 14년(798)의 명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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